때아닌 국호 논쟁. 남한 or 한국?

오늘 저녁 먹다가 연합보 신문이 있어서 잠깐 보고 있는데,
'남한'관련 기사가 반페이지 정도 실려 있었다.

때아닌 국호 논쟁이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대만주재 서울대표부에서 각 언론사에 협조 공문을 보내서 관행적으로 쓰고 있는 '남한'이라는 호칭을 '한국'으로 바꿔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공문 내용에 양국을 지칭하는 말로 한/대(韓/台)로 썼던 모양인데, 이게 빌미가 되어 너희들은 중화민국이라고 안부르고 대만이라고 부르면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게 말이나 되냐...

그런데, 여기까진 그냥 좋은데, 지금부터 대만 언론의 저질스러움이 시작된다.

"남한이 한성漢城을 서울首爾로 변경하는데 성공하더니, 명칭 바꾸는데 재미가 들렸다."
"그리고, 일본과 영토분쟁 상황인 죽도竹島에 대해서도 독도獨島로 바꾸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이게, 칼럼이나 주장 같은 글도 아니고, 기자가 쓴 기사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다.
서울의 명칭이나, 독도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아마 무지해서 일 것 이라고 보는데,
문제는 이러한 무지가 선정적인 기사로 둔갑해서 소모적인 논란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만은 민족국가형성의 지체로 인해 민족형태가 여전히 모호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유엔가입을 둘러싸고 국호 관련한 입장 차이로 이슈화된 적도 있었다.
대만에 살면서 개인적으로는 이로 인한 왜곡된 대만민족주의를 종종 엿볼 수 있었고, 특히 타자화된 한국을 통해 구별짓기하려는 모습들은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거의 얘기도 되지 않는 '공자가 한국 사람이다'라는 주장을 대만에서는 대부분 친구들이 다 알고 있다.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쑨원은 한국사람 아니냐?' 등일 정도다. 이게 대부분 미디어의 선정적 보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런 보도태도가 지속되는데는 그만큼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이라는 타자를 통해서만 민족성을 상상하는 것이 대만이다. 그것도 중국이라는 현실적 존재 속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가능하긴 하다.

한편, 이런 대만의 민족주의는 대만사회가 한국과 일본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앞서 얘기했듯이, 대만 언론들은 독도에 대해서 마치 일본영토에 대해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대만 역시 일본과 조어대 관련 영토 논쟁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역설적이다. 물론 대만의 현대사 속에서 일본과의 역설적 관계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이런 모습은 지난 올림픽에서도 두드러졌는데, 대만의 최고 인기스포츠인 야구경기 중계에 있어서도, 대만은 줄곧 한국을 라이벌로 일본을 스승으로 여기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엄밀히 실력으로 보면, 그게 틀린 얘기도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타자화된 한국을 통해 불구/별종의 중화민족주의가 부상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암튼,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보면, 대만에서 한국을 중국어로 韓國으로 부를 것인지, 南韓으로 부를 것인지의 문제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서 남한과 북한이라는 용어법은 국가를 지칭한다기 보다는 지리적인 범위를 지칭한다고 보는게 맞고, 동시에 특수한 맥락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고 본다. 한편, 중국의 경우 한국을 韩国으로, 북한을 朝鲜으로 부르고 있는데, 정식국호를 줄여서 부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남북한 모두 크게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만에서 한국을 南韓으로 부를 것을 고집하고 있다면, 이는 아마도 일반적 영문 명칭인 South Korea의 중역中譯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대만에서는 英語도 美語로 불리고 있고, 인사말도 hello/ bye-bye가 你好/再見 보다 더 상용화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번 해프닝은 민족국가형성의 지체가 배태한 언어에 있어서의 자아분열적 증상의 일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예술인생 | 2008/09/04 22:34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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